2009년 9월 1일 화요일

“엄마.. 나 원서 쓸 대학이 없어..”

 

  오늘 과외를 하기 위해 학생의 집에 갔다. 내가 이 학생을 맡은게 4월달이니 벌써 5개월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하지만 성적은 그대로....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만 알아도 괜찮겠는데 하나는커녕 그 전 것도 까먹는 학생이라.. 성적이 오르지 않아 나중에는 “에휴, 내 돈이나 벌면되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고3학생이라 가르치는 나 또한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에 대해 신경이 쓰이지만 학생보다 내가 더 하겠느냐는 생각으로 하루, 한주 한달 그렇게 5개월 동안 과외를 갔었다.

 

고3학생들이 가장 열심히 공부한다던 여름방학..

나도 학생 부모님을 볼 낯짝이 없어서 1주일에 5번 과외를 가서 가르치겠노라고 학생에게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이 일도 잠시.. 학생이 내가 가려고 하면 오늘 안 오면 안되겠느냐고 계속 그러는 것이었다. 그 이유인즉 내가 복습을 제대로 해놓지 않으면 1주일에 5번씩 안 오고 그냥 오던대로 3번만 올 것이라고 말해놨었기 때문이다. 3번만 올 것이라는 말이 계속 가슴에 남았는지 학생은 수업을 뒤로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렇게 이 학생의 여름방학은 끝나버리고 말았다. 공부를 안했으니 성적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더 떨어졌다.

 

 

 

  난.. ‘정말 이 애는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하던 때에 다른 과외 학생이 생겨서 과외를 2개를 하게 되었다.

  난 우리 어머니께 “엄마, 과외 하나 더 생겼으니까 지금 하던거 그만할래. 애가 가르쳐도 말을 못 알아들어.”라고 말했더니 어머니가 “그래도 부모님 마음은 그게 아니라고 수능 날때까지 하나라도 더 가르쳐” 라고 하셔서 지금까지 계속 이 학생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학생 집에 가서 과외를 하려고 하니 학생이 수시원서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이 학생이 원서를 쓸 곳은 전혀 없었다. 내신 성적은 그야말로 학교에서 뒤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성적이었다. 난 이러한 성적으로 수시 쓸 생각을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이 학생이 수시가 아니면 대학에 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 학생은 학교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봉사활동만큼은 꾸준히 해서 봉사시간이 500시간이 넘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학생과 나는 과외를 해야 되는 시간에 컴퓨터로 쓸만한 대학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때, 과외하는 학생 어머님이 집에 오셨다. 어머님은 학생과 내가 컴퓨터를 하는 모습을 보셨지만 별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난 왜 공부를 가르치지 않느냐고 할 줄 알았지만 어머님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자 난 깜짝 놀랐다.

 

  학생과 내가 수시 모집에 쓸만한 대학들을 A4용지에 쭉 써봤는데... 이름도 생소한 대학들만 보였다. 어머님도 그 때서야 관심이 있으신 듯 우리 쪽을 쳐다보셨다. 어머님은 학생과 내가 써 놓은 대학들을 보시러 우리 쪽으로 오셔서 나에게 물으셨다.

 

 

“애가 갈만한 대학은 있나요?”

“아.....네................”

난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내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학생이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에 갈만한 성적이 안됩니다. 많이 실망하시겠지만 그게 사실입니다. 여기에 써 놓은 대학들을 한 번 보세요.”

 

어머님은 순간 말씀이 없으셨다. 자신의 아들의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았지만 막상 종이에 쓰여진 대학들을 마주하니 할 말이 없으셨던 모양이었다.

 

내가 말을 이어서

 

“이게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이 학생의 현실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정시모집으로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 현재 모의고사 성적도 최하위권이고........ 해서 .. 정시로는 힘들 것 같고 수시모집에 올인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학생이 봉사활동만큼은 열심히 했기 때문에 학교 성적이 아닌 봉사활동등의 수시모집에 지원을 한다면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어머님은

 

“알고 있었어요. 말은 못했지만... 애 아버지가 워낙 기대가 크셔서.... 걱정이에요. 전 괜찮은데 말이죠......또, 애(학생)는 사회복지학과를 가고 싶은데 애 아버지가 공대를 꼭 가라고 해서......”

 

과외를 가서 가끔씩 학생이 나한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기는 사회복지를 하고 싶은데 아버지가 공대를 가라고 하신다. 자기는 정말 공대하고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정말 미쳐버리겠다. 그리고 지금의 자기 성적으로는 아버지가 원하는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갈 수가 없다.... 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내가...어머님께

 

“아버지의 마음은 알겠지만 힘듭니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이 아니라 지방에 있는 4년제 대학도 정시로는 힘듭니다. 그것도 공대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학생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맞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게 해야지요. 전 사회 복지학과를 가도록 하고 싶어요.”

 

어머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자 학생이...

 

“엄마가 언제 나한테 사회복지학과 가라고 했어! 아빠가 공대 가라고 하면 그냥 조용히 있었으면서!”

“엄마가 언제 그랬니?... 난 너가 아빠가 말하고 있을 때 공감을 하길래 너가 공대갈 마음이 있구나 생각해서 그랬지..”

“아! 답답해. 난 성적도 안되고 이런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대학에 있는 공대 들어가서 뭐해. 할 것도 없다고!!”

“.............응........”

 

어머니와 나는 할 말이 없었고 학생은 화장실로 갔다. 어머니가 나에게 하소연 하듯이 말씀하셨다.

 

“애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한테 많이 눌려서 살았어요. 우울증도 있었고요.. 그러다가 고2때 복지회관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더니 얼굴도 많이 좋아지고 정말 봉사하는걸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애 아버지는 지금 공대 나와서 일을 하고 있고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길을 터주기 위해서 애한테 공대를 가라고 하는건데 애 아버지 말투가 워낙 툭툭 뱉는 스타일이라서... 애한테 많이 상처가 되나봐요.. 애가 많이 여린데...”

 

이 말이 마치자 학생이 화장실에 나왔다. 나오자 어머님이 학생에게

“XX야, 엄마가 너 편이 되줄게. 사회복지학과 쓰자.. ”

“엄마는 매일 말만 내편이 되어준데! 아빠하고 나하고 말할 때는 계속 자면서!”

“그건 엄마가 일하다 보니까 피곤하니까 그렇지... 아휴... 오늘 아빠 오면 엄마가 도와 줄테니까 꼭 말하자.”

“싫어, 엄마 말 못 믿겠어. 이게 무슨 한 두 번이어야지..”

 

이렇게 어머니와 아들간의 다툼 아닌 다툼이 오가자 중간에 있는 나로서는 어찌해야 될지 몰랐다. 그래서 난 차분하게 학생에게 말했다.

 

“XX야, 너가 평소에 아버지한테 말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자나. 오늘이 날이야. 아버지하고 딱 앉아서 내가 번호를 매겨 줄테니까 꼭 이 이야기만큼은 아버지하고 해봐.. 너 인생이 걸린거자나. 이번이 아니면 너에게 대학에 들어갈 기회가 없을거야!”

 

내가 아버지와 꼭 이야기 하라고 해준 것은..

1. 사회복지학과에 간다고 할 것.

2. 수리 가형이 아닌 수리 나형 시험을 본다고 할 것.

 

이 2가지였다. 별 거 아닌 말 같았지만 아버지와 아들간의 대화보다는 아버지의 말에 억눌렸던 아들에게는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내 말을 들은 어머님은

 

“오늘 꼭 얘기하자.. 응!? 아들아..”

“엄마.. 근데 나 정말.. 마땅히 쓸 대학이 없어... 사회복지학과라도...”

“..........................”

 

침묵이 흘렀다. 쓸 대학이 없다니........

 

갑자기 어디에서 이런 말귀가 생각이 났는지 내 입에서 이 말이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나온 성적은 어쩔 수 없는거야.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도록 노력하자.”

 

 

이렇게 어머니와 나, 학생과의 수시모집에 대한 대화가 끝이 났다.

 

원래 과외를 해 주어야 하는 수학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무언가 학생에게 도움이 될만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니 많이 뿌듯했다. 하지만 수시모집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내가 알아본 대학들의 입학전형 중 일반전형은 면접보다 교과성적 100%인 곳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수시모집이 처음 생겼을 때의 취지는 성적보다는 학생들의 적성 및 특성을 파악하여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 수시모집은 교과 성적 100%라는 변태전형으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이제 9월이 되면 뉴스, 신문등에서 대학 수시 모집에 관한 뉴스가 많이 방송 될 것이다. 학교 성적이 우수해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없는... 아니.. 원서조차 쓰기 쉽지 않은 학생들이 더 많을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의 성적을 받아든 학생들은 믿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것이 바로 현실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고의 성취를 얻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추천글 : 에몽의 안주거리 - 첫데이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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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개:

  1. trackback from: 자아는 없고 시험만 있는 한국 교육 제도
    현대의 부모들은 자기 아이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아이를 학교 제도에 집어넣어 누르려고 한다. 그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는 정신병자가 되거나 아니면 예술가가 된다. 나는 아이를 낳으면 학교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 John Lennon 학생때 난 내가 되게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성적표 위의 높은 점수와 낮은 등수 만큼 잘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스스로 최고라고 생각해 본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최고가 되고 싶어하긴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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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현장감 넘치는 재밌는 글 잘 보고 갑니다. 아들을 굳이 공대에 보내야겠다는 아버지, 사회복지학과에 가지 못하면 사회복지에 기여할 수 없는 현실. 모두 재앙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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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공대와 사회복지학과의 차이는 좀 큰 것 같은데..

    현명한 결정이 나오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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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후기 읽기 전에 읽으러왓어요 ㅋㅋ 후기 읽으러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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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http://blogs.ildaro.com/348 그분에게 이 기사가 도움이 될거 같아서..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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