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0일 금요일

한국 최고의 유격수 - 손시헌

 

 

 

혹자는 제목만 보고 왜 한국 최고의 유격수가 손시헌이냐고 따질 수 있을 것이다.  박진만, 박기혁 등 WBC에서 활약한 선수들을 제치고 왜 손시헌이냐고... 손시헌은 WBC에 나가지도 못했으면서라고..

하지만 필자는 두산 팬이기도 하거니와 수비력을 놓고 보았을 때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선수라고 생각한다.

 

2003년 - 손시헌의 등장

 

두산에게 있어서 김민호 선수의 은퇴 이후 유격수 자리는 항상 골칫거리였다.  마땅한 유격수가 없었다.  수비도 불안했거니와 타격도 신통치가 않았다.  이러던 차에 2003년 신고선수로 입단한 선수가 두산베어스의 유격수자리를 서서히 꿰차기 시작했다.  키도 작고 발도 그리 빠르지 않은 선수여서 얼마지나면 사라지겠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선수는 안정된 포구와 송구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더니 2003년 시즌 59경기에 출장하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2004년 - 주전으로서의 발돋움.

 

2003년 59경기에 출장하며 주전 유격수로서의 자질을 보여준 손시헌선수는 2004년 122경기에 출장하며 주전 유격수로 확실히 발돋움했다.  안정된 수비실력은 투수들에게 편안함을 가져오며 김경문 감독의 신임을 듬뿍 받았다.  하지만 타격에서는 그리 큰 활약은 하지 못했다. 타율 0.231로 그저 그런 타격실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수비실력 만큼은 야구 관계자들에게서 최고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2005년 - 골든글러브 수상

 

2004년 주전으로 발돋움한 손시헌선수는 2005년 타격에서도 눈을 뜨기 시작했다.  타율 0.276, 60타점으로 두산의 하위타선에서 쏠쏠한 역할을 해내며 박진만이 버티고 있는 한국 최고의 유격수 자리를 넘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해 2005년 유격수부분 골든글러브 수상을 해내며 신고선수 신화에 이름을 남겼다.

 

2007년 ~ 2008년 - 상무..

 

2006년에도 변함없는 활약으로 10승투수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 손시헌 선수가 상무로 군 입대를 하게 되었다.  두산으로서는 커다란 공백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WBC라는 야구 최고의 무대가 있었으나, 손시헌 선수는 그 무대에 나서지 못했다.  뽑히지 못했던 이유로는 왜소한 체구와 멀티포지션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무에 있어서 경기경험도 확신을 주지 못해서였다.

 

2009년 - 화려한 복귀

 

2008년 상무를 제대하고 두산에 복귀한 손시헌선수는 그가 상무에 있었던 동안 같은 포지션에서 활약했던 김재호, 이대수 선수등과 치열한 경쟁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된 후 경쟁은 커녕 두산 내야진의 부동의 유격수로 활약을 하고 있다.  타율 0.265, 38타점으로 상무 제대 후 클러치 능력 또한 향상 되며 두산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다. 

 

두산베어스 유격수 No.13 손시헌

 

2009년 7월 7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 중 고효준 선수의 사구를 맞고 병원에 후송되었는데 빠른 복귀를 바랍니다. 

 

프로필

 

  • 신상정보 : 1980년 10월 19일생 / 172cm / 73kg
  • 경력사항 : 화곡초-선린중-선린정보고-동의대
  • 프로데뷔 : 200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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